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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맹은 智,德.勞,體의 4-H 이념을 새로운 국민정신운동으로 승화발전시키고 농어민단체와 연대하여 농어민 복지증진과 농수산 기술향상, 농수산물 유통구조개선을 도모하고 4-H운동을 적극 지원하여 밝고 건강한 공동체 사회를 건설함에 그 목적이 있다.
 
 

해방(1945)직후 우리나라의 실정은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면에서 혼란이 거듭되었고 특히 낙후된 농촌의 부흥과 실의에 빠진 청소년 의 선도등이 국가적인 과제로 대두되었다.

1947년, 당시 구자옥 경기도 지사와 경기도 군정관인 앤더슨 중령, 이진묵 경기도 문정관등이 중심이 되어 미국의 4-H구락부 활동을 경기도에 도입하는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 회의에서 농도원과 각시군에 1~2개 씩의 구락부를 조직하자는의견이 모아졌고 명칭은 '농촌청년구락부'로 결정되었다.

안양,양주,여주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청소년구락부의 활동은 식량증산을 비롯한 농촌부흥운동의 성격이 짙었고 구락부원도 30세 전후가 많았다.

1950년 초반까지 1,900여개 구락부에 5만여부원이 참여했으나 6.25동란이 발발함에 따라 중단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전쟁이 소강된 상태로 전환된 1952년(12월) 정부가 4-H운동을 국가시책사업으로 채택함에 따라 4-H운동은 활성화 되고 전국적 으로확대되는 계기를 맞았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산업의 각분야를 도와주기 위해 1953년 8월, 한미재단이 발족되었다. 1954년에는 예비역 대령 앤더슨씨가 재단 고문으로 부임했고 그해 11월에 민간후원단체인 '한국4-H구락부 중앙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연말에 제1회중앙경진대회가 서울 반도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수립과 후원체제를 바탕으로 4-H운동은 전후 복구와 농촌재건운동과 연계해 추진되었다.

 
 

그동안 농촌지도체계의 다원화로 혼선과 비능률이 초래되었으나 1962년 3월 농촌진흥법의 공포로 농촌진흥청이 발족되고 정부의 조직적인지원으로 4-H운동이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1965년에는 특히 4-H특수지도사의 부활을 비롯해 민간단체의 육성,자원지도자 연찬회, 4-H연합회의 적극적 육성등이 이루어 졌다.

이밖에 4-H회원의 연령이 10~20세에서 13~24세로 변경되었고 전국대학4-H연구회 연합회의 결성,4-H신문의 발행,4-H운동발전 연찬개최, 전국4-H지도자야영대회등 다양한 활동이 전개됨으로써 4-H운동의 기반이 확충되었다.

 
 

1970년대는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4-H운동은 중흥기를 맞았다.

새마을 운동은 사실,'4-H이념'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에 4-H회원들은 쉽게 동참할 수있고,따라서 4-H운동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마을단위에서 부터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

4-H운동의 발전을 위한 각종 회의도 개최 되어, 1971년의 제 9차 농촌청년 지도자회의, 1976년의 한국4-H운동 30주년을 겸한 연찬회등을 통해 4-H지도 자들이 4-H운동의 향후 진로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 4-H운동을 새마을운동과 연계하여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한 [4-H구 락 부 육성강화방안]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음에 따라 1979년 1월부터 4-H구락부가 '새마을청소년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1년 새마을청소년중앙연합회가 결성되어 새마을운동본부 회원단체로 가입되면서 1983년 한국4-H후원회의 사업 일부가 새마을본 부로 이관되었고 후원회장도 당연직 회장제에서 선출제로 바뀌었으며 ,4-H운동의 조직관리도 새마을운동본부로 이관되었다.

4-H회의 조직관리가 새마을운동본부로 이관되었지만 지방조직이 빈약하고4-H운동의 지도경험이 부족했다. 따라서 조직관리는 농촌 진흥청이 계속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따라 4-H운동이 표류하는 일대 혼란이 초래되었다.

1988년 제 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새마을청소년회가 4-H회로 명칭이 환원되기는 하였지만 80년대의 4-H운동은 전반적으로 격변의 시대적 흐름이었다.

1990년 4-H인들의 오랜숙원사업이었던 한국4-H회관이 어려운 여건 에도 불구하고 한국4-H후원회에의해 건립되어 4-H회원 교육훈련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991년 4-H운동의 조직관리가 농촌진흥청으로 환원되었으나 10여년간의 공백 상태는 쉽게 메워지질 않았다.

한편, 국민경제의 산업화가 꾸준히 추진되면서 그동안 농촌은 노령화 부녀화 공동화가 초래되었고 영농 회원수가 급격히 감소 한 반면 학교4-H회 조직이 활기를 띠었다.

1996년 일선의 농촌지도소가 시장.군수의 보조기관화 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4-H운동을 농촌에만 국한 시키지 말고 도시로 확산시 켜야 하며 아울러 4-H운동을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4-H운동의 지난날의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4-H운동이 요구되고 있다.